불교신문
2013.05.15
이성수 기자
갓바위 부처님 고자료 ‘첫 확인’
불교문화재연구소 ‘하양현지도’ ‘선본사사적기’ 발굴
사시사철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갓바위 부처님에 대한 귀중한 자료가 발굴해 화제가 되고 있다.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각림스님)는 오늘(15일) 선본사 갓바위 불상에 관한 새로운 자료인<하양현지도(河陽顯地圖)>와<선본사사적기(禪本寺事蹟記)>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경산 선본사(주지 덕문스님) 성보문화재 정밀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자료를 확인했다.
<하양현지도>는 1872년 제작된 고지도이다. 이 지도에는 선본사 도량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주불전은 물론, 좌우 요사와 누각의 가람배치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지도에 게재된 ‘禪本菴自官門三十里(선본암자관문삼십리)”라는 글을 통해 선본사의 지리적 정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선본사, 삼층석탑, 가파른 산 정상인 관암(冠巖)의 갓바위 불상으로 연결되는 형세도 확인된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조선후기에 이미 선본사 도량에 갓바위 불상이 포함됐음을 시사한다”면서 “불상의 관(冠)을 삿갓으로 묘사한 점으로 미뤄 보아 조선후기에도 갓바위 부처님으로 불렸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1821년 범해(梵海)스님이 작성한<선본사사적기>는 갓바위 불상을 주제로 한 내용이어서, 선본사에서 갓바위 불상을 매우 존숭했음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선본사사적기>내용 가운데 “凡經千有餘載(“범경천유여재) … 而石像依然端雅慈容(이석상의연단아자용)” “觀感興起祈祝獲應者多矣(관감흥기기축획응자다의)” “此卽義玄和尙之功(차즉의현화상지공)”이 특히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 구절의 우리말 풀이는 차례대로 다음과 같다. “천여 년이 지났는데 석상은 의연하게 단아한 자비로운 용모” “불상을 보고 감응이 일어나 기도와 축원을 올리면서 감응을 얻은 사람이 많다” “이것(불상의 조성)은 의현화상의 공”
이에 대해 불교문화재연구소는 “갓바위 불상이 천년, 즉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됐다는 사실과 불상을 조성한 이는 의현스님이며, 당시에도 갓바위 불상이 많은 이의 기도와 축원에 감응하는 영험있는 부처님이라는 사실들이 기록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쉽게도<선본사사적기>원본은 찾을 길이 없고, 사진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선본사 주지 덕문스님은 오늘 오전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동안 갓바위 부처님이 기도객이 많이 찾는 기도처로만 알려지고 유지되어 왔다”면서 “이번에 발굴한 자료들을 통해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량이라는 근거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덕문스님은 “성보뿐 아니라 문화재적 가치도 분명히 갖고 있음을 검증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선본사와 갓바위 부처님에 대한 학술, 문화재적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불교문화재연구소장 각림스님은 “이번에 발굴된 두 자료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자료”라면서 “조선후기 갓바위 부처님의 신앙과 선본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각림스님은 “선본사 주지스님이 학술대회를 하고 갓바위 불사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더니 이러한 결과가 나온것 같다”면서 “불교문화재연구소에서 갓바위 부처님 연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이번에 확인한 이번 자료들을 선본사 정밀학술조사보고서인<팔공산 선본사>에 수록할 예정이다.
한편 경산 선본사는 오는 5월29일 오후1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팔공산 선본사 갓바위 부처님’이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주관하는 이날 학술대회에는 불교사, 미술사, 건축사, 보존학 전공자들이 참석해 갓바위 부처님에 대한 학술적, 문화재적 가치를 조명할 예정이다.
이날 학술대회는 선본사 주지 덕문스님의 기념사와 불교문화재연구소장 각림스님의 개회사로 시작된다. 1부 ‘팔공산 선본사와 갓바위 부처님’에서는 △통일신라시대 팔공산의 불교신앙(김상현 동국대 사학과 명예교수) △팔공산 동록(東麓)의 지리환경과 관봉 석조여래좌상및 선본사의 입지특성(한동수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의 양식 특징과 조성배경(김춘실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의 발표가 진행된다.
이어 2부 ‘선본사의 불교문화재와 보존’에서는 △팔공산 선본사 석조문화재에 대한 고찰(신용철 양산시립박물관장) △조각승 청허와 경산 선본사의 목조아미타불좌상(송은식 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선본사 관봉 석조여래좌상 및 삼층석탑에 대한 암질 분석(좌용주 경상대 지구과학과 교수) △선본사 신중도와 동화사 양진암 신중도의 채색안료에 대한 분석 특성 비교(송유나 공주대 문화재보존학과)에 대한 발표가 이어진다.
3부 종합토론은 ‘불교문화재 조사와 연구의 방향성’이란 주제로 흥선스님(문화재위원)이 좌장을 맡아 진행된다.
다음은 불교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선본사사적기>원문과 한글로 옮긴 내용이다. 우리말 번역은 박상준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가 했다.
<원문>
禪本寺事蹟記 天無日月則不足以成天 世無佛法則不足以濟世 世之有佛若天之有日月 而開明覺路莫越於斯 故謂之世尊亦謂之佛日也 出自天竺而爰及大夏及餘諸國 則莫非佛日之普照也 自兹以往 佛像之興寺宇之立如星羅于天 輾轉至于今者也 如來在世之時 優闐國王思慕佛德 以栴檀香木刻佛形而供養之 此佛像之始也 頻婆娑羅王信其道而立精舍 此寺宇之初也 供佛安僧俱盡其道 而是爲後來緇徒之安其所聸其容發信 息心之道場榜樣也 唯我海東則自麗代而濫觴 君臣上下欽行崇奉高僧凡經千有餘載 其間寺宇屢變 而石像依然端雅慈容 使觀者無古今之異 而觀感興起祈祝獲應者多矣 不唯僧徒之聸樣發心 且愚夫愚婦能發深信 此卽義玄和尙之功 而佛日遠照之德也夫 道光元年解夏日 時住持梵海焚香謹記
<풀이>
하늘에 해와 달이 없으면 하늘을 이룰 수가 없고 (마찬가지로) 세상에 불법이 없으면 세상을 구제할 수가 없다. 세상에 부처님이 있는 것은 마치 하늘에 해와 달이 있는 것과 같다. 깨달음의 길을 열어서 밝히는 데에는 이 부처님보다 뛰어난 것이 없다. 그 때문에 세존世尊이라 하고 불일佛日이라 부른다.
불법은 천축天竺으로부터 멀리 대하大夏에 이르렀고 여타 모든 나라에 퍼져 나가서 불일이 두루 비추지 않음이 없다. 이때 이후로 불상이 조성되고 사찰이 건립되었으니 하늘의 별처럼 펼쳐져서 점차적으로 지금까지 이르러 온 것이다.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우전국의 왕이 부처님의 덕을 흠모하여 전단향 나무에 부처님 모습을 새겼으니 이것이 불상의 시작이고, 빈비사라왕이 불도를 믿어서 정사精舍를 건립했으니 이것이 사찰이 건립된 시초이다.
불상을 모시고 승가 대중을 편안하게 거처하게 하여 불도가 극진하게 갖추어지도록 하였다. 이것이 후대의 치도緇徒들이 그 불상이 있는 곳을 편안하게 여기게 된 것이고 그 부처님의 용모를 우러러 보면서 신심을 일으켰으니 스님[息心]들이 도량을 건립하여 불상을 모신 것이다. 우리나라 해동의 경우에는 고구려 시대에 처음 불상을 조상하기 시작하여 임금과 신하와 위아래 사람들이 공경스럽게 고승들을 받들어 모셨다.
그렇게 천여 년이 지나갔는데 그 사이에 사찰의 모습은 여러 차례 변했지만 석상石像은 의연하게 단아한 자비로운 용모를 간직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고금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게 하였다. 이 불상을 보고 감흥이 일어나 기도와 축원을 올리면서 감응을 얻은 사람이 많다. 스님들만 불상을 보고 발심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남녀들도 깊은 신심을 일으켰다. 이것은 의현義玄화상의 공功이고 불일佛日이 멀리 비추어준 덕德이라 할 것이다.
도광 원년(1821) 하안거 해제일에 쓰다. 이때의 주지 범해(梵海)가 분향하고 삼가 쓰다.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6216
2013.05.15
이성수 기자
갓바위 부처님 고자료 ‘첫 확인’
불교문화재연구소 ‘하양현지도’ ‘선본사사적기’ 발굴
사시사철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갓바위 부처님에 대한 귀중한 자료가 발굴해 화제가 되고 있다.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각림스님)는 오늘(15일) 선본사 갓바위 불상에 관한 새로운 자료인<하양현지도(河陽顯地圖)>와<선본사사적기(禪本寺事蹟記)>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경산 선본사(주지 덕문스님) 성보문화재 정밀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자료를 확인했다.
<하양현지도>는 1872년 제작된 고지도이다. 이 지도에는 선본사 도량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주불전은 물론, 좌우 요사와 누각의 가람배치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지도에 게재된 ‘禪本菴自官門三十里(선본암자관문삼십리)”라는 글을 통해 선본사의 지리적 정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선본사, 삼층석탑, 가파른 산 정상인 관암(冠巖)의 갓바위 불상으로 연결되는 형세도 확인된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조선후기에 이미 선본사 도량에 갓바위 불상이 포함됐음을 시사한다”면서 “불상의 관(冠)을 삿갓으로 묘사한 점으로 미뤄 보아 조선후기에도 갓바위 부처님으로 불렸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1821년 범해(梵海)스님이 작성한<선본사사적기>는 갓바위 불상을 주제로 한 내용이어서, 선본사에서 갓바위 불상을 매우 존숭했음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선본사사적기>내용 가운데 “凡經千有餘載(“범경천유여재) … 而石像依然端雅慈容(이석상의연단아자용)” “觀感興起祈祝獲應者多矣(관감흥기기축획응자다의)” “此卽義玄和尙之功(차즉의현화상지공)”이 특히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 구절의 우리말 풀이는 차례대로 다음과 같다. “천여 년이 지났는데 석상은 의연하게 단아한 자비로운 용모” “불상을 보고 감응이 일어나 기도와 축원을 올리면서 감응을 얻은 사람이 많다” “이것(불상의 조성)은 의현화상의 공”
이에 대해 불교문화재연구소는 “갓바위 불상이 천년, 즉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됐다는 사실과 불상을 조성한 이는 의현스님이며, 당시에도 갓바위 불상이 많은 이의 기도와 축원에 감응하는 영험있는 부처님이라는 사실들이 기록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쉽게도<선본사사적기>원본은 찾을 길이 없고, 사진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선본사 주지 덕문스님은 오늘 오전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동안 갓바위 부처님이 기도객이 많이 찾는 기도처로만 알려지고 유지되어 왔다”면서 “이번에 발굴한 자료들을 통해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량이라는 근거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덕문스님은 “성보뿐 아니라 문화재적 가치도 분명히 갖고 있음을 검증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선본사와 갓바위 부처님에 대한 학술, 문화재적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불교문화재연구소장 각림스님은 “이번에 발굴된 두 자료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자료”라면서 “조선후기 갓바위 부처님의 신앙과 선본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각림스님은 “선본사 주지스님이 학술대회를 하고 갓바위 불사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더니 이러한 결과가 나온것 같다”면서 “불교문화재연구소에서 갓바위 부처님 연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이번에 확인한 이번 자료들을 선본사 정밀학술조사보고서인<팔공산 선본사>에 수록할 예정이다.
한편 경산 선본사는 오는 5월29일 오후1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팔공산 선본사 갓바위 부처님’이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주관하는 이날 학술대회에는 불교사, 미술사, 건축사, 보존학 전공자들이 참석해 갓바위 부처님에 대한 학술적, 문화재적 가치를 조명할 예정이다.
이날 학술대회는 선본사 주지 덕문스님의 기념사와 불교문화재연구소장 각림스님의 개회사로 시작된다. 1부 ‘팔공산 선본사와 갓바위 부처님’에서는 △통일신라시대 팔공산의 불교신앙(김상현 동국대 사학과 명예교수) △팔공산 동록(東麓)의 지리환경과 관봉 석조여래좌상및 선본사의 입지특성(한동수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의 양식 특징과 조성배경(김춘실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의 발표가 진행된다.
이어 2부 ‘선본사의 불교문화재와 보존’에서는 △팔공산 선본사 석조문화재에 대한 고찰(신용철 양산시립박물관장) △조각승 청허와 경산 선본사의 목조아미타불좌상(송은식 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선본사 관봉 석조여래좌상 및 삼층석탑에 대한 암질 분석(좌용주 경상대 지구과학과 교수) △선본사 신중도와 동화사 양진암 신중도의 채색안료에 대한 분석 특성 비교(송유나 공주대 문화재보존학과)에 대한 발표가 이어진다.
3부 종합토론은 ‘불교문화재 조사와 연구의 방향성’이란 주제로 흥선스님(문화재위원)이 좌장을 맡아 진행된다.
다음은 불교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선본사사적기>원문과 한글로 옮긴 내용이다. 우리말 번역은 박상준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가 했다.
<원문>
禪本寺事蹟記 天無日月則不足以成天 世無佛法則不足以濟世 世之有佛若天之有日月 而開明覺路莫越於斯 故謂之世尊亦謂之佛日也 出自天竺而爰及大夏及餘諸國 則莫非佛日之普照也 自兹以往 佛像之興寺宇之立如星羅于天 輾轉至于今者也 如來在世之時 優闐國王思慕佛德 以栴檀香木刻佛形而供養之 此佛像之始也 頻婆娑羅王信其道而立精舍 此寺宇之初也 供佛安僧俱盡其道 而是爲後來緇徒之安其所聸其容發信 息心之道場榜樣也 唯我海東則自麗代而濫觴 君臣上下欽行崇奉高僧凡經千有餘載 其間寺宇屢變 而石像依然端雅慈容 使觀者無古今之異 而觀感興起祈祝獲應者多矣 不唯僧徒之聸樣發心 且愚夫愚婦能發深信 此卽義玄和尙之功 而佛日遠照之德也夫 道光元年解夏日 時住持梵海焚香謹記
<풀이>
하늘에 해와 달이 없으면 하늘을 이룰 수가 없고 (마찬가지로) 세상에 불법이 없으면 세상을 구제할 수가 없다. 세상에 부처님이 있는 것은 마치 하늘에 해와 달이 있는 것과 같다. 깨달음의 길을 열어서 밝히는 데에는 이 부처님보다 뛰어난 것이 없다. 그 때문에 세존世尊이라 하고 불일佛日이라 부른다.
불법은 천축天竺으로부터 멀리 대하大夏에 이르렀고 여타 모든 나라에 퍼져 나가서 불일이 두루 비추지 않음이 없다. 이때 이후로 불상이 조성되고 사찰이 건립되었으니 하늘의 별처럼 펼쳐져서 점차적으로 지금까지 이르러 온 것이다.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우전국의 왕이 부처님의 덕을 흠모하여 전단향 나무에 부처님 모습을 새겼으니 이것이 불상의 시작이고, 빈비사라왕이 불도를 믿어서 정사精舍를 건립했으니 이것이 사찰이 건립된 시초이다.
불상을 모시고 승가 대중을 편안하게 거처하게 하여 불도가 극진하게 갖추어지도록 하였다. 이것이 후대의 치도緇徒들이 그 불상이 있는 곳을 편안하게 여기게 된 것이고 그 부처님의 용모를 우러러 보면서 신심을 일으켰으니 스님[息心]들이 도량을 건립하여 불상을 모신 것이다. 우리나라 해동의 경우에는 고구려 시대에 처음 불상을 조상하기 시작하여 임금과 신하와 위아래 사람들이 공경스럽게 고승들을 받들어 모셨다.
그렇게 천여 년이 지나갔는데 그 사이에 사찰의 모습은 여러 차례 변했지만 석상石像은 의연하게 단아한 자비로운 용모를 간직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고금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게 하였다. 이 불상을 보고 감흥이 일어나 기도와 축원을 올리면서 감응을 얻은 사람이 많다. 스님들만 불상을 보고 발심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남녀들도 깊은 신심을 일으켰다. 이것은 의현義玄화상의 공功이고 불일佛日이 멀리 비추어준 덕德이라 할 것이다.
도광 원년(1821) 하안거 해제일에 쓰다. 이때의 주지 범해(梵海)가 분향하고 삼가 쓰다.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6216